Key Points
- 호주 젊은층, ‘재정적 갭이어’ 확산…고비용 도시 떠나 지방으로 이주
- 렌트비 최대 75% 절감, 저축·내 집 마련 위한 새로운 생존 전략 부상
- 전문가 “개인적 기회이자 구조적 주거 문제의 반증…근본적 대책 필요”
나혜인 PD: 오늘 친절한 경제는 최근 호주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특별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젊은층에서 주거비 부담과 생활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홍태경 프로듀서와 함께 알아봅니다.
호주 젊은층 사이에서 떠오르고 있는 '재정적 갭이어(financial gap year)'라는 새로운 트렌드. 어떤 내용인가요?
홍태경 PD: 간단히 말하면 젊은이들이 돈을 모으기 위해 일시적으로 생활비가 비싼 도시를 떠나 지방으로 이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대학생들이 갭이어를 통해 대학에 입학하기 전 경험을 쌓듯이, 젊은 층에서 재정적 목표를 위해 라이프스타일을 일시적으로 아예 바꾸는 현상을 뜻합니다.
나혜인 PD: 구체적인 사례가 있을까요?
홍태경 PD: 대표적인 사례로 저희 SBS The Feed가 만나본 31세 팀 애벗 씨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팀 씨는 시드니에서 디지털 마케팅 직종에서 10년 이상 근무해 왔는데요, 늘어나는 생활비 부담을 정리하기 위해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고 퀸즐랜드 외곽의 소나무 벌목 현장으로 주거지를 옮겼습니다. 주거지뿐만 아니라 직업 자체도 옮기게 된 것이죠. 브리즈번에서도 700km나 떨어진 정말 외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나혜인 PD: 디지털 마케팅에서 벌목으로 직업을 바꾸다니... 정말 극적인 변화네요. 왜 그렇게까지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요?

Tim, 31, moved to inland Queensland and says his living expenses have dropped by 75 per cent. Source: Supplied
나혜인 PD: 75%나 줄어들었다니 정말 엄청난 절약 효과군요. 그렇지만 도시에 살다가 갑자기 외진 곳으로 환경이 바뀌다보면 적응하기도 쉽지는 않을텐데, 팀 씨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홍태경 PD: 지금 그의 하루 업무는 오전 5시 30분에 시작해서 늦은 오후에 끝납니다. 하루 종일 소나무 벌목을 하는데, 시드니에서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익힌 벌목 기술을 활용해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일합니다.
시드니에서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줌 회의와 분기별 계획 회의를 했던 때보다 더 육체적으로 반복적인 일이라고 설명하는 팀 씨는 시드니로 복귀하기 전인 내년까지는 이 작은 마을에서 벌목 일을 하면서 지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혜인 PD: 대도시인 시드니에 살다가 작은 퀸즐랜드 외곽 마을에 사는 삶은 정말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홍태경 PD: 마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작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슈퍼마켓 하나, 주유소 하나, 초등학교 하나가 전부인 마을이지만 팀 씨는 그곳의 단순함과 고요함을 즐기고 있으며, 시드니에서 자라 대부분의 삶을 보낸 자신에게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는 것이 하나의 큰 장점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 얘기한 75%나 줄어든 렌트비가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요,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고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꾸준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저축과 수입이 정체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는 팀 씨는 "'최소한의 생활비로 생활하면서 13년이 된 차를 타고, 새 옷도 안 사고. 아주 검소하게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나혜인 PD: 팀 씨 사례를 보니 그야말로 "재정적 갭이어"를 보내는 대표적인 호주인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내 집 마련과 같은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훨씬 생활비가 저렴한 곳으로 일시적으로 이사하는 사람들. 또 다른 사례도 있나요?
홍태경 PD: 네, 더 체계적으로 접근한 커플도 있습니다. 29세 사라 브라운씨와 30세 윌 리들리씨 커플인데, 이들은 아예 스프레드시트에 철저히 계산을 한 뒤 시드니에서 포스터로 이주했습니다. 포스터는 시드니에서 4시간 거리의 NSW 중북부 해안도시죠.
나혜인 PD: 스프레드시트로 계산했다는 게 인상적이네요. 어떤 결과가 나왔나요?
홍태경 PD: 시드니에서 주당 820달러 내던 렌트비를 고스란히 저축으로 돌릴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사라씨는 "지금까지 가장 재정적으로 안정된 상태"라고 말하는데요, 이제는 재정적 불안감 없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됐다고 만족해 했습니다.
나혜인 PD: 지역을 포스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홍태경 PD: 두 사람은 처음에는 투자 목적으로 보유할 계획이었던 뉴사우스웨일즈 중북부 해안 마을에 부동산을 매입한 후, "재정적 갭이어"를 보내기 위해 그곳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Will and Sarah made the move from Sydney to the coastal NSW town of Forster earlier this year. They say when their "financial gap year" is up, they will reassess their options. Source: Supplied
나혜인 PD: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지방으로 이주해서도 일을 해야한다는 부분이 또 하나의 장벽이 될텐데요.
홍태경 PD: 현실은 쉽지만은 않죠. 친구들은 차로 4시간 거리에 있고, 사라 씨는 직장 때문에 포스터와 시드니를 오가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여전히 근무 시간의 절반은 출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혜택이 희생보다 더 크다고 말합니다. "친구들을 모두 여기로 데리고 오고 싶다”는 사라 씨는 그러면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미소 지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편안해졌고 앞으로의 중요한 순간들을 재정적 불안 없이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더 많아졌다는 점에 만족한다고 전했습니다.
나혜인 PD: 이렇게 재정적 갭이어를 위해 지방 이주를 택하는 것은 개인적 선택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이게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건가요?
홍태경 PD: 네, 확실한 데이터가 있습니다. KPMG의 테리 론슬리 도시경제학자에 따르면, 이런 현상이 코로나19 이후에 크게 가속화됐다고 합니다. 이는 재택 근무 기회, 주택 가격 상승, 그리고 지역 경제의 변화가 그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론슬리 박사는 “단기 계약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방 도시에서 몇 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는 확실히 지속적인 현상이고 사람들이 대도시를 떠났다고 다시 돌아오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신 지역 이주 지수를 보면 2025년 3월 분기에 수도권에서 지방으로의 이주가 10.5% 증가습니다. 이는 팬데믹 발생 이후 호주 수도에서 지방으로 이주하는 전반적인 추세와 일치합니다.
나혜인 PD: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는 말씀이시네요?
홍태경 PD: 맞습니다. 현재 수도권에서 지방으로의 이주 수치는 코로나19 이전 평균보다는 20.5%나 높습니다.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건축가나 엔지니어 같이 예전에는 도시의 CBD에 묶여있던 직종들도 지방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이죠. 중요한 회의만 화상으로 참여하면 되니까요.
나혜인 PD: 주로 어떤 연령대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건가요?
홍태경 PD: 지역에 따라 추세가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사람들이 시드니나 멜번과 같은 도시를 떠나 "가격과 거주 편의성"을 위해 떠나는 가장 큰 집단층을 차지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나혜인 PD: 그런데 이런 현상이 계속 지속될 수 있을까요? 부작용은 없나요?
홍태경 PD: 실제로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수도권 이외 지역의 임대료와 주택담보대출은 여전히 상당히 저렴하지만, 지난 몇 년간 주택 시장 호황으로 인해 많은 지방 중심지의 주택 공급이 부족해졌습니다. 코로나19 이전 공실률은 3~4% 정도였는데, 지금은 1.5~1% 수준인데요 일부 지역에서는 주택 공급이 급증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론슬리 박사는 설명합니다.
지방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그 지역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도시의 주거 문제가 지방으로 옮겨가고 있는 건데요, "이처럼 인구 유입이 급증하는 가운데, 대도시의 주택 문제도 함께 겹치면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론슬리 박사는 전했습니다.
나혜인 PD: 사실 앞서 언급된 개인적 희생도 만만치 않죠. 팀씨 같은 경우는 "마을에 모든 게 하나씩만 있다"고 표현했어요. 슈퍼마켓 하나, 주유소 하나, 초등학교 하나... 정말 최소한의 인프라만 있는 거죠. 사라씨 커플도 친구들과 4시간 떨어져 살고 있고 출근하기 위해 장거리 이동이 필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홍태경 PD: 핵심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되찾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팀씨의 말이 인상적인데요, "코로나 이후로 처음으로 미래에 대해 정말 기대된다"고 말했습니다. 목표도 구체적인데요 1년 안에 10만 달러를 모아서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지속가능한 취미 농장을 사 염소, 오리, 채소밭을 꾸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도시에서의 만족감은 잠시 미뤄둔 것 같아요. 뭔가를 놓치는 대신,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설렘을 느낀다"고 팀 씨는 말합니다.
나혜인 PD: 결국 대도시 주거비 문제의 반증이기도 하군요.
홍태경 PD: 정확합니다. 론슬리 전문가도 "주거 부담능력이 대도시 복귀의 큰 장벽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즉 집을 사야 하는 나이대의 젊은이들이 '부담능력과 삶의 질' 때문에 지방을 선택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나혜인 PD: 이런 현상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홍태경 PD: 긍정적인 측면과 우려스러운 측면이 공존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경제적 자유를 얻고 꿈을 실현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도시 집중과 지방 소외라는 구조적 문제를 젊은이들 개인이 해결하려고 하는 셈이거든요. 근본적인 주거정책 개선 없이는 이런 '도시탈출'이 계속 늘어날 것 같습니다.
나혜인 PD: 마지막으로, 이런 선택을 고려하는 젊은이들에게 전문가들은 어떤 조언을 하나요?
홍태경 PD: 사라와 윌 씨 커플처럼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돈만 생각할 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커리어 연속성, 정신적 웰빙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요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임시방편이지 영구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혜인 PD: 네, 호주 젊은층의 새로운 생존 전략 '재정적 갭이어'에 대해 홍태경 프로듀서와 함께 살펴봤습니다.
상단의 오디오를 재생하시면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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