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70대 중반, 책임에서 벗어나고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행복감 높여
- 84년에 걸친 하버드 연구, 좋은 인간관계가 건강과 행복의 핵심 증명
- 혼밥과 단절된 일상이 노년층의 정서적 고립 심화 불러
- '시간과 관계에 투자하는 삶의 태도가 진짜 행복 만든다'
“언제 가장 행복하셨나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선뜻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죠.
행복한 순간을 오래 붙잡을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달라질까요?
삶과 사회를 문화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컬처인, 오늘은 ‘행복’을 주제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합니다.
홍태경 PD: 사람들이 흔히 ‘젊을 때가 좋다’, ‘나이 들수록 외롭다’는 말을 하잖아요. 정말 그럴까 궁금한데요. 실제 이에 대한 연구가 있다고요?
유화정 PD: 행복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삶의 흐름 속에서 바뀌는 감정이죠. 이에 대한 여러 분석 연구들이 있는데요. 그 중 독일 보훔 루르대학교 연구진은 46만여 명을 대상으로 종단연구를 실시했습니다.
생애 전반에 걸친 주관적 웰빙 추이를 조사한 것인데요. 연구에서 삶의 만족도는 9세~ 16 이후, 즉 10대 후반에 낮아졌다가, 20대부터 70세까지 꾸준히 증가하고, 이후 다시 소폭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홍태경 PD: 나이대 별로 감소했다 다시 올랐다, 일정하지 않네요. 이유가 뭘까요?
유화정 PD: 연구를 주도한 수잔 뷔커 교수는 “청소년기에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춘기 동안 자신의 신체와 사회생활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신체 변화와 함께 학업 스트레스, 한국 같은 경우 치열한 입시 경쟁, 그리고 또래들 간의 사회적 비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요. 노년기의 하락은 건강 저하, 사회적 고립, 배우자 상실 경험 경험 등과 연결돼 있습니다.
또한 감정적인 측면에서는 부정적 감정은 사춘기를 거치며 청년기 이후 줄었다가 노년기에 다시 오르고, 반면 긍정 감정은 나이듦에 따라 전반적으로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홍태경: 최근 한 영국 보고서에서는 ‘74세가 가장 행복한 나이’라고도 하던데요. 그 이유는 뭘까요?
유화정 PD: 그 시기가 되면 직장에서의 압박, 경제적 부담, 자녀 양육 같은 책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됩니다. 대신 자신을 위한 시간과 취향을 더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는 거죠. 또 감정 조절 능력이 좋아져서, 분노보다는 공감과 관용을 우선하게 됩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노년기의 뇌는 부정 자극보다는 긍정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하는데요.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살아내는 태도가 행복의 핵심이라는 메시지와도 연결됩니다.
홍태경 PD: 저희 방송에서도 앞서 다룬 내용인데요. 2025년 세계 행복지수에서 호주는 10위에 오른 반면 한국은 58위였죠.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날까요?
유화정 PD: 사회 시스템 차이가 큽니다. 호주는 사회적 신뢰, 복지, 일과 삶의 균형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과도한 경쟁, 긴 노동시간, 낮은 사회 신뢰도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웃 간의 친밀도나 삶에 대한 통제감, 또한 공공서비스 만족도 같은 지표도 한국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습니다.
홍태경 PD: 행복도는 개인의 감정 문제만은 아니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시스템의 문제도 크다는 거네요.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혼밥이 일상이 됐잖아요. 예전 식사의 개념은 밥상 머리 옹기 종기 둘러 앉는 모습이었는데요. 특히 노년층에서 혼밥이 증가하고 있다던데요?
유화정 PD: 맞습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년 1인 가구가 늘고 있고, 이로 인해 혼자 식사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노인 1인 가구의 32% 이상이 외로움을 일상적으로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또 6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하루에 사람과 나누는 말 수가 200단어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식사라는 건 단순한 생존 활동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연결하는 일상이기도 하잖아요. 혼밥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혼밥이 반복되면, 그만큼 정서적 고립감이 커질 수 있는데요. 혼밥 문화는 단순히 ‘식사’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연결망의 부재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홍태경 PD: 종종 그런 얘기 하죠. ‘성공해야 행복하다, 아니 행복해야 성공한다’. 앞쪽은 아마도 부모의 말이겠고요. 어떤 쪽에 무게가 실어질까요?
유화정 PD: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행복에 대해 오랫 동안 연구해 온 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후자에 무게를 둡니다. ‘행복해야 성공한다’고 최 교수는 강조했는데요.
그러면서 이를 ‘행복의 선행성 효과’라고 설명했습니다. 행복이 성공을 이끄는 원동력이라는 의미죠. 실제 행복한 사람이 도전에도 강하고, 학습력도 높고, 건강도 좋고, 심지어 수입도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홍태경 PD: 그렇다면, 행복을 위해 우리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건 뭘까요? 행복의 조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유화정 PD: 특히 ‘시간’과 ‘관계’에 집중하라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돈으로 바꾼다면?”이라는 질문에 행복한 사람들은 최소 600만원,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은 40만원 수준으로 답했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홍태경 PD: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이고, 그 결과도 흥미롭네요. 그만큼 관계와 시간은 소중한 자산이라는 거네요. 행복과 관련해 하바드 대의 아주 특별한 연구도 있었죠?
유화정 PD: 그렇습니다. 무려 84년 동안 ‘좋은 인생’의 비결을 좇은 하버드대의 성인 발달 연구인데요. 하바드 의대 연구진은 1938년, 당시 만 19세였던 하버드 학부생 268명을 시작으로, 보스턴 빈민가 출신 10대 청소년 456명까지 총 724명을 수십 년에 걸쳐 추적 관찰했습니다.
이들의 삶은 각기 다른 조건과 환경 속에서 전개됐지만, 놀랍게도 공통된 결론이 하나 있었는데요.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좌우하는 핵심은 ‘돈, 명예, 성공’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의 따뜻한 관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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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PD: 경제적 안정은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지만, 근본적인 비결은 될 수 없다는 게 연구팀의 판단입니다. 일정 수준부터는 돈이 행복감을 높여주지 못한다는 것이죠. 연구를 이끈 하버드 의대 정신과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그는 “아끼는 사람과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행복엔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홍태경 PD: 이 연구에서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일수록 면역력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요?
유화정 PD: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고립된 중년은 코르티솔 등 스트레스 호르몬과 염증 수치가 더 높았고 뇌 기능도 비교적 떨어졌습니다. 반면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혈관 질환,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이 낮았고, 기억력과 면역력도 더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심층 면접과 건강 진단, 의료 기록, 가족 관계, 종교 성향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했고, 이후 그들의 자녀 1300여 명까지 연구 대상에 포함시켰는데요. 연구 대상 중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들은 정신적 충격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편지를 써준 친구와 동료 군인 등을 꼽았습니다.
월딩어 교수는 "외로움은 흡연만큼 건강에 해롭다"며, 따뜻한 인간관계야말로 감정뿐 아니라 신체 건강에까지 긍정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습니다.
홍태경 PD: '좋은 인생은 좋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는 것 같네요.
유화정 PD: 건강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할까?라는 물음에 월딩어 교수는 주변에 먼저, 그리고 가볍게 다가가라고 조언합니다.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아도 된다. 정치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 계산원이나 버스 운전기사와 웃으며 나누는 짧은 인사와 같은 소소한 사회적 연결도 행복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소셜 네트워크도 상호작용하는 데 사용된다면 행복을 높이는 데 효과 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수동적으로 소비한다면, 오히려 불행해지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홍태경 PD: 최근 한국에서 유행한 행복 조언이 있죠. “행복하고 싶으면, 식세기를 사라.” 이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식세기는 식기세척기를 말하는 거죠.
유화정 PD: 맞습니다. 얼핏 유머처럼 들리지만 굉장히 실용적인 조언입니다. 반복적인 가사 노동 시간을 줄이면 그 시간으로 가족과 보내고, 경험을 쌓고, 나를 돌볼 수 있다는 건데요.
설거지, 청소 같은 반복적인 노동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시간과 경험의 여유를 만들어주고 그것이 행복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실제로 시간 확보형 소비를 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높은 행복감을 느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하버드대 연구에서도 가사노동을 줄이는 데 돈을 쓴 사람들의 행복감이 높다고 밝혀졌고요.
결국 ‘시간의 여유’가 곧 ‘감정의 여유’가 된다는 말이 되겠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취미, 운동, 가족 시간 같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겠습니다.
홍태경 PD: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기분’이라기보다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태도와 선택일 수도 있겠네요.
유화정 PD: 맞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일상의 균형과 연결에서 출발하는 삶의 기술이 아닐까 싶어요.
홍태경 PD: 행복을 위한 작은 실천, 저도 오늘 마트에 들리면서 실행해 보겠습니다. 문화로 세상을 보는 시간, 컬처인. 오늘은 행복을 주제로 나이, 사회 시스템, 삶의 태도, 일상 속 실천 등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봤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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